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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카테고리 없음 2007. 12. 19. 00:01
예술가를 분류해보면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죠. 첫번째는 모짜르트처럼 어릴때 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지만 젊어서 죽고 마는 형, 두번째는 바하처럼 처음에는 그냥 그렇지만 오랜 기간동안 노력을 다하여 결국 높은 예술적 경지에 이르는 형, 세번째는 바로 피카소 처럼 타고난 재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명도 길어 수많은 명작을 남기는 형입니다. 이런 세 번째 유형의 예술가들은 말년으로 갈수록 재능과 연륜이 어울어진 작품을 남기기 때문에 이들이 남긴 말년의 작품은 참으로 감동을 일으키는 힘이 큽니다.

제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Vladimir Horovitz도 세 번째 유형의 예술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천재 피아니스트로 널리 인정을 받은 그는 80이 넘어서까지 공연을 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젊어서는 고난도의 테크닉을 요구하는 리스츠의 곡들을 연주하길 즐겼던 그가 말년에 이르러서는 초등학생도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가장 많이 연주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연주하는 트로이메라이를 들어보면 정말 평생을 피아노와 함께 살아온 대 예술가의 연륜이 단순한 선율을 통해 아름답게 표현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더이상 어려운 곡을 연주해서 누구한테 인정받을 필요가 없어진 지금, 그는 한껏 여유롭게 어린이의 곡을 진심으로 즐기며 연주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전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Minority report'를 보며, 스필버그도 어느새 거장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젊어서 죠스, ET등을 만들며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누렸고, Schindler's List, Saving Private Ryan 등으로 예술적인 재능도 인정 받았으며, Dreamworks 를 설립하여 재정적인 안정도 얻은 지금, 그는 어떤 걱정도 없이 자신의 영화적 재능을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만들면 영화의 수준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지난 2003년 프랑스에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오며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이제 나도 좀 여유를 갖고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젊으면 더 치열하게 사는 것이 정상이겠죠. 생각도 극단적으로 하고, 말도 극단적으로 하고...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아, 꼭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는 단계가 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닌데, 똑같은 방향을 계속 가야 하는 것은 맞는데, 좀더 여유롭게 걸어가도 되는거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지요.

광고도 보면 작은 회사는 강하고 자극적인 광고를 합니다. 여유가 있는 회사는 광고도 여유롭습니다. 코카콜라 광고를 보면 곰 몇마리가 장난치다가 콜라 마시고 끝납니다. 나이키광고는 작대기 인간이 동네 총각들이랑 농구하는 것이 전부이지요. 전에 나온 IBM광고는 엄마 코끼리랑 아기 코끼리가 걸어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내가 만들어 온 인생의 광고는 어떤 색깔이었나 반성해 봅니다.

어린 나무는 쑥쑥 자랄지 몰라도 그 밑에 그늘이 없습니다. 오래된 나무는 성장하지 않는 것 같아도 그늘이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휴식을 주게 됩니다. 나는 어떤 나무인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쑥쑥 자라는 젊은 나무였다면, 이제는 성장의 속도보단 그늘의 넓이를 생각하는 새로운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외칠 수도 있는 것을 조용히 말하는 여유. 뛰어갈 수도 있는 거리를 걸어가는 여유. 남에게 손해를 당해도 웃고 용서해주는 여유... 이렇게 여유 있는 인간이 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와서 쉼을 얻고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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