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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7.12.16 두려움

아버지의 마음을 품은 사역자

카테고리 없음 2007. 12. 21. 21:00
제가 10년간 YWAM에서 간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프랑스에서 DTS 간사로 섬기던 2003년입니다. 이 때 우리 전도여행팀에 한 미국인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내게 매우 거친 말과 행동으로 대했고, 나는 내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해 벌 받는 것 같아 매우 감정이 상했죠.

그가 나를 그렇게 미워한 이유는 내가 그의 아버지를 연상케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감정적으로 매마른 목사님이었는데, 나이가 아주 많았을 때, 그를 낳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중년이 되어 낳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찌 몰라 거리감을 두었고, 그는 버려졌다는 상처를 안고 자랐죠. 그리고 DTS에 와서 권위자인 나를 보니까 아버지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몰려와 나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지요.

저는 그 학생을 놓고 많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따끔하게 꾸짖으면 정신을 차릴까.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마음을 터 놓고 부탁을 해볼까. 아니면 그런 사람이 없는 듯 무시해 버릴까... 그런데 하나님이 제게 "저 아이가 왜 네게 그렇게 행동하는지 아느냐?"라고 물으시더군요. 하나님은 "저 아이는 아버지로 부터 사랑을 못 받아 마음이 상하였고, 너라는 권위자를 만나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그는 내가 무조건 밉겠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은 아버지의 사랑을 향한 갈망이 너무도 크기에 뒤틀려진 행동을 하는 것이었죠.

그때 저는 사역에 있어서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올바르게 자라려면 사랑을 받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라나면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부족하고, 그러한 사랑의 결핍은 누군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전 까지는 인생의 가장 커다란 문제로 남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사랑해 주는 것이 바로 사역자의 역할이겠지요 특히 요즘처럼 부모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세대에게는 더욱 부모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저의 인간관계의 기본은 'give and take'였던 것 같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내게 잘 해주는 사람에겐 나도 잘해주고, 내 마음에 안드는 사람, 내게 상처주는 사람은 무시하고 멀리 했죠. 예전에는 그게 옳은 태도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특히 사역자가 사역의 대상자에게 사랑을 베풀 용의가 없다면, 이는 온전한 사역자의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마치 부모가 오래 참음으로 자식이 성년에 이르도록 도와주듯, 사역자라면 아비의 마음을 가져야 사역의 대상이 자라날 수 있겠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스승은 많지만 아비는 여럿이 아니다. 너희 아비는 바로 나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전 4:15). 많은 교회를 세운 바울은 결국 그 교회들에 의해 다 버림 받고, 늘 외로움과 거절감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늘 '아비의 마음'을 잃지 않았고, 그렇기에 자신있게 '나는 너희의 아버지다'고 말할 수 있었죠. 제가 계산적인 태도로 학생들을 대한다면, 제 감정은 보호가 되고, 사역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배울 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점에서 프랑스 DTS에서 겪은 힘든 경험은 하나님이 제게 아버지의 마음을 가르치시고자 특별히 준비한 귀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성숙한 마음을 품기 원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역의 대상을 포용하고, 감싸주고, 그들이 성숙하도록 인내로 도와주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가능토록 은혜를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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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카테고리 없음 2007. 12. 16. 01:45
프랑스 YWAM에서 간사로 일하던 저는, 1996년 크리스마스를 스위스의 노샤텔이라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집이 있는 장-피에르와 마들린이 저를 집으로 초청했기 때문이죠. 마침 크리스마스 동안 머물 곳을 찾던 저는 그들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고, 결국 그곳에서 열흘 정도 머물렀습니다. 제게는 그 기간이 곧 시작할 DTS를 준비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 되었죠.

저를 그곳에 초대한 장-피에르와 마들린 부부는 아프리카에서 여러 해 동안 선교사로 일하던 분들로,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을 매우 편안하게 해주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노샤텔에 머무는 동안도 제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들과 교제하면서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각각 매우 힘든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지금처럼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은 큰 고통을 기도로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그들이 지금 상담학교의 간사로 일하게 된 것도 그들이 이처럼 힘든 경험을 했기에 다른 사람을 돕기 원하는 마음 때문이었죠.

프랑스 YWAM에서 만난 또 다른 사역자인 제라르의 이야기는 좀 더 극적입니다. 제라르는 DTS 교장을 지냈고, 베이스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연말을 맞아 간사 송년회에 참석했을 때 그의 옆에 앉았다가 그의 놀라운 과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부모가 죽고,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아원에서 매우 즐겁게 살았고, 사람들이 상상하듯 힘든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가 성인이 되어 고아원에서 나온 후, 나쁜 친구들의 꾐에 빠져 범죄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 물건을 훔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중무장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군에서 복무하던 중이었기에 문제가 매우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의 상관이 잘 무마해서 다행히 처벌을 면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어떤 여자를 사귀게 되었고, 그 여자의 부모와 친해져서 결국 그 부모가 그를 양자로 받아들였고,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주께 돌아와 지금은 YWAM에서 주를 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들은 윌리엄은 나중에 제게 "나는 그가 크리스천 가정에서 아무 문제없이 자라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더군요. 저라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도 장-피에르와 마들린 부부처럼 사람이 겉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삶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90년대에 방영하던 21세기 위원회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환경미화원인데,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많이 해서 칭찬 릴레이의 주인공으로 뽑혔던 인물이지요. 진행자가 그를 찾아가자, 그는 자신이 매주 5kg의 소고기를 사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최근엔 수기 공모전에 글을 써 탄 상금 20만 원에다가 자신의 돈 10만 원을 보태서 기부했다고 신이 나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술에 절어 폐인처럼 사는 ‘개고기’(그의 표현) 었지만, 이제 신앙의 힘으로(그의 목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완전히 변화되어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산다고 말했습니다.

방송이 끝날 즘, 그는 카메라에 대고 아이들에게 "중간고사 잘 봐 아버지 좀 기쁘게 해다오" 하고 말한 후, 갑자기 울먹이는 목소리로 집을 나간 아내에게 호소했습니다. ‘여보, 지난 십 년간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요즘도 매일 당신이 집에 돌아오도록 기도한다오. 부디 이 방송을 보거든 꼭 돌아오도록 하오. 당신만 돌아온다면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이오.’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이 여섯, 일곱 살 때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는 쓰레기차를 몰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남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하는 그에게, 그렇게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남을 부러워하면서 삽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고, 저 가정은 절대 싸움이 없을 것처럼 보이며, 저 목사님은 신앙의 회의 같은 것은 없을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처럼 우리가 부러워하는 모습은 실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모든 인간은 어두운 과거, 잊고 싶은 기억, 떨쳐버리기 어려운 죄책감이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죠.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나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은 감추고, 남의 위대한 모습만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더욱 드러내기 어려워지고, 남이 나의 문제를 알게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만 커집니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꾸밈 없이, 더 이상의 남에 대한 환상 없이, 자신과 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곳은 몰라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는 누구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할 때, 모든 가식을 제거한 참된 성도의 교제가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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