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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09 은혜와 진리
  2. 2007.12.18 도덕적 파산

은혜와 진리

카테고리 없음 2008. 3. 9. 11:41
비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비난하는 근거로 쓰는 말 중, "그리스도인은 교만하고 일방적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소유했다는 확신이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진리를 모르는 사람"으로 대하기가 쉽지요.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교만한 사람"으로 인식하기 마련입니다.

진리를 안다고 꼭 교만할 필요는 없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은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가 많은 미국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은 동성애에 대한 비난을 쏟아놓으며 "동성애자는 지옥간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를 혐오한다"는 말을 하길 좋아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동성애자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리를 주신 것은 우리가 남을 판단하기 위함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우선 우리 자신이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은 진리를 모르고, 따라서 그들의 삶에는 많은 잘못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정죄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 대해 귀를 막을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요 1:14). 우리는 진리를 말할 뿐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바울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엡 4:15).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사랑이 없이 말한다면 듣는 사람에게 해를 끼칠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진리와 함께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면, 아무리 진리를 말한다 할찌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은혜와 진리를 함께 보이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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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파산

카테고리 없음 2007. 12. 18. 20:56
최근 영국의 타임즈는 돈을 주고 성을 사는 남성들에 관한 칼럼을 실었습니다 (Who pays for sex? You'd be surprised). 이 글에 따르면 사람들의 상상과는 다르게 중년의 외로운 남성뿐 아니라 젊고 매력적인 남성도 성매매를 한다고 합니다. 이들이 술집에서 여자를 쉽게 구할 수 있음에도 성매매를 하는 이유는, 돈을 주고 동의하에 관계를 가지면 나중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군요. 즉, 여자를 유혹해 관계를 가지면 상대방에게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만,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관계는 그러한 의무감이 들지 않기 때문에 성매매를 선호한다고 합니다. 이 글의 저자는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내 미래의 남편이 우리가 만나기 전 암스테르담과 프라하에서 매춘부와 주말을 보냈다고 고백한다면 내 마음이 언짢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정욕 때문에 술집에서 여자를 잠자리로 꼬시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인가? 나도 그렇게 접근하는 남자를 만나봤기에, 어느쪽이 더 나쁘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저자는 성매매가 나쁜 행동이라는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즉,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성매매는 상대에게 돈을 주고 서비스를 사는 것이기에 상대를 착취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몸을 파는 여성의 영혼이 망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물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영혼의 파괴는 논쟁의 근거가 되지 못하죠. 결국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잘잘못의 기준은 법인데, 영국은 성매매 알선이나 성매매 광고는 허용이 안되도, 성매매 자체는 불법이 아닙니다. 즉, "성매매는 불법행위니 하면 안된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뻔히 잘못된 행동도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영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의 현실입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인간은 올바른 행동과 잘못된 행동을 구분할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로 사회의 기준이 개인의 행복으로 바뀌면서, 과거에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던 많은 행동 (간음, 거짓말 등)을 잘못으로 판단할 근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슬람 국가가 기독교 문명에 대해 "도덕적 파탄상태"라고 비난하는 이유지요.

근대 이후에 많은 사람은 "도덕은 상대적이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비교해서 나라마다 도덕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결국, 도덕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그렇다면 왜 도덕에 얽매어 살아가는가? 그냥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인생을 즐길 수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였죠.

하지만, 인간은 마음 속에 어느 정도 보편적인 판단의 기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한 후 자신의 배우자가 여러 명과 육체 관계를 이미 맺었음을 안다면, 누구나 불쾌하지 않겠습니까? 위에 언급한 칼럼의 저자도 성매매한 과거가 있는 남편에 대해 언짢을 것이라고 말해 놓고는 왜 언짢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즉, 현대인은 잘못을 보면 잘못인줄 알아도, 왜 잘못인지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는 것이지요. 거짓말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상황이라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거짓말을 하고, 어떤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 진실을 말한다면, 후자가 더 올바른 태도의 사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현대인들이 믿는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 뭐든지 해도 된다"는 기준에 따른다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너의 행동은 잘못이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따라야 할 기준에 대해 분명히 가르칩니다. 물론 모든 상황에 대한 자세한 계명은 아니지만, 성적인 방탕이나 도둑질, 거짓말 등 삶의 중요한 행동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기준을 따르기 원치 않았고, 결국 하나님께 등을 돌린 채 자신들이 살고 싶은 세상을 건설하였습니다. 그 결과 현대 문명은 영적, 도덕적 타락이 극심할 뿐 아니라, "기준"을 거부하기에 "타락"이라는 개념 조차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악해질 수록 우리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님의 기준을 따르기 원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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