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12.31 하나님께 충실함
  2. 2007.12.17 나는 누구인가?
  3. 2007.12.16 두려움

하나님께 충실함

카테고리 없음 2007. 12. 31. 22:44
예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성격이 곧고 바른말 하기를 좋아해 "의로운 야고보" (James the Just) 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야고보서에서 점차 세속화하는 교회를 향해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 4:4)

그는 이 구절에서 우리가 세상과 벗된다면 이는 하나님과 결혼관계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기로 결정하는 행위입니다. 만약에 내가 배우자가 아닌 다른 어떤 대상을 더 사랑한다면, 이는 육체관계 여부와 상관 없이 부정이고, 결혼을 깨트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신부로 부르신 것은 우리가 그분을 가장 사랑하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바쁘기에 하나님은 잊고, 우리의 생활에만 집착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고, 가정을 돌보고, 친구를 만나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사실을 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분의 신부로서 얼마나 그분을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7)


그분은 우리가 가족을 향한 사랑보다 그분을 더 사랑하기를 기대하시는 것이지요. 실제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식을 제사로 바치는 시험을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치고자 했던 것은 우리의 마음이 가장 사랑해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이고, 다른 어떠한 대상이라도 그분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이는 곧 제거해야 하는 우상이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식조차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면 안될찐대, 돈이나 직업의 성공 등 다른 대상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2007년을 보내며, 내 마음은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했는지 되돌아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지는 않았나 반성해 볼 때, 하나님 앞아서 많은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새로 시작되는 한 해는 더욱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커지기 바랍니다. 그래서 더 이상 부정을 저지르는 배우자가 아닌,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로 준비되기 원합니다.

이 블로그를 찾는 모든 분들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더욱 커지는 한해를 맞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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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카테고리 없음 2007. 12. 17. 14:47

다음은 Dietrich Bonhoeffer의 Who am I?라는 시입니다. 1996년 프랑스에서 간사로 일할때 이 시를 제 방 앞에 붙여놨었습니다. 결국 본회퍼가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정체성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Who am I

Who am I? They often tell me

I stepped from my cell’s confinement

Calmly, cheerfully, firmly,

Like a squire from his country-house.

Who am I? They often tell me

I used to speak to my warders

Freely and friendly and clearly,

As though it were mine to command.

Who am I? They also tell me

I bore the days of misfortune

Equally, smilingly, proudly,

Like one accustomed to win.


Am I then really all that which other men tell of?

Or am I only what I myself know of myself?

Restless and longing and sick, like a bird in a cage,

Struggling for breath, as though hands were

compressing my throat,

Yearning for colors, for flowers, for the voices of birds,

Thirsting for words of kindness, for neighborliness,

Tossing in expectation of great events,

Powerlessly trembling for friends at an infinite distance,

Weary and empty at praying, at thinking, at making,

Faint, and ready to say farewell to it all?


Who am I? This or the other?

Am I one person today and tomorrow another?

Am I both at once? A hypocrite before others,

And before myself a contemptibly woebegone weakling?

Or is something within me still like a beaten army,

Fleeing in disorder from victory already achieved?

Who am I? They mock me, these lonely questions of mine.

Whoever I am, Thou knowest, O God, I am Thine!


Wer bin ich?

Wer bin ich? Sie sagen mir oft,
ich träte aus meiner Zelle
gelassen und heiter und fest
wie ein Gutsherr aus seinem Schloß.

Wer bin ich? Sie sagen mir oft,
ich spräche mit meinen Bewachern
frei und freundlich und klar,
als hätte ich zu gebieten.

Wer bin ich? Sie sagen mir auch,
ich trüge die Tage des Unglücks
gleichmütig, lächelnd und stolz,
wie einer, der Siegen gewohnt ist.

Bin ich das wirklich, was andere von mir sagen?
Oder bin ich nur das, was ich selbst von mir weiß?
Unruhig, sehnsüchtig, krank, wie ein Vogel im Käfig,
ringend nach Lebensatem, als würgte mir einer die Kehle,
hungernd nach Farben, nach Blumen, nach Vogelstimmen,
dürstend nach guten Worten, nach menschlicher Nähe,
zitternd vor Zorn über Willkür und kleinlichste Kränkung,
umgetrieben vom Warten auf große Dinge,
ohnmächtig bangend um Freunde in endloser Ferne,
müde und zu leer zum Beten, zum Denken, zum Schaffen,
matt und bereit, von allem Abschied zu nehmen?

Wer bin ich? Der oder jener?
Bin ich denn heute dieser und morgen ein anderer?
Bin ich beides zugleich? Vor Menschen ein Heuchler
und vor mir selbst ein verächtlich wehleidiger Schwächling?
Oder gleicht, was in mir noch ist, dem geschlagenen Heer,
das in Unordnung weicht vor schon gewonnenem Sieg?

Wer bin ich? Einsames Fragen treibt mit mir Spott.
Wer ich auch bin, Du kennst mich, Dein bin ich, o Go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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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카테고리 없음 2007. 12. 16. 01:45
프랑스 YWAM에서 간사로 일하던 저는, 1996년 크리스마스를 스위스의 노샤텔이라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집이 있는 장-피에르와 마들린이 저를 집으로 초청했기 때문이죠. 마침 크리스마스 동안 머물 곳을 찾던 저는 그들의 제안을 고맙게 받아들였고, 결국 그곳에서 열흘 정도 머물렀습니다. 제게는 그 기간이 곧 시작할 DTS를 준비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 되었죠.

저를 그곳에 초대한 장-피에르와 마들린 부부는 아프리카에서 여러 해 동안 선교사로 일하던 분들로,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을 매우 편안하게 해주는 은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노샤텔에 머무는 동안도 제가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들과 교제하면서 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각각 매우 힘든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지금처럼 온화하고 따뜻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은 큰 고통을 기도로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라고 합니다. 그들이 지금 상담학교의 간사로 일하게 된 것도 그들이 이처럼 힘든 경험을 했기에 다른 사람을 돕기 원하는 마음 때문이었죠.

프랑스 YWAM에서 만난 또 다른 사역자인 제라르의 이야기는 좀 더 극적입니다. 제라르는 DTS 교장을 지냈고, 베이스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저는 연말을 맞아 간사 송년회에 참석했을 때 그의 옆에 앉았다가 그의 놀라운 과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는데, 어릴 때 부모가 죽고, 고아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아원에서 매우 즐겁게 살았고, 사람들이 상상하듯 힘든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가 성인이 되어 고아원에서 나온 후, 나쁜 친구들의 꾐에 빠져 범죄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 물건을 훔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중무장 경찰들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군에서 복무하던 중이었기에 문제가 매우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의 상관이 잘 무마해서 다행히 처벌을 면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어떤 여자를 사귀게 되었고, 그 여자의 부모와 친해져서 결국 그 부모가 그를 양자로 받아들였고, 많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주께 돌아와 지금은 YWAM에서 주를 섬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와 함께 그의 이야기를 들은 윌리엄은 나중에 제게 "나는 그가 크리스천 가정에서 아무 문제없이 자라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더군요. 저라도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도 장-피에르와 마들린 부부처럼 사람이 겉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삶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90년대에 방영하던 21세기 위원회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환경미화원인데,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많이 해서 칭찬 릴레이의 주인공으로 뽑혔던 인물이지요. 진행자가 그를 찾아가자, 그는 자신이 매주 5kg의 소고기를 사다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최근엔 수기 공모전에 글을 써 탄 상금 20만 원에다가 자신의 돈 10만 원을 보태서 기부했다고 신이 나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술에 절어 폐인처럼 사는 ‘개고기’(그의 표현) 었지만, 이제 신앙의 힘으로(그의 목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습니다) 완전히 변화되어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산다고 말했습니다.

방송이 끝날 즘, 그는 카메라에 대고 아이들에게 "중간고사 잘 봐 아버지 좀 기쁘게 해다오" 하고 말한 후, 갑자기 울먹이는 목소리로 집을 나간 아내에게 호소했습니다. ‘여보, 지난 십 년간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요즘도 매일 당신이 집에 돌아오도록 기도한다오. 부디 이 방송을 보거든 꼭 돌아오도록 하오. 당신만 돌아온다면 모든 일이 잘되는 것이오.’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의 아내는 아이들이 여섯, 일곱 살 때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는 쓰레기차를 몰고 다니면서 아이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남들을 위해 많은 선행을 하는 그에게, 그렇게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있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남을 부러워하면서 삽니다. 이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고, 저 가정은 절대 싸움이 없을 것처럼 보이며, 저 목사님은 신앙의 회의 같은 것은 없을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처럼 우리가 부러워하는 모습은 실은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입니다. 모든 인간은 어두운 과거, 잊고 싶은 기억, 떨쳐버리기 어려운 죄책감이 있고,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죠.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나만 빼고 다른 사람은 다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은 감추고, 남의 위대한 모습만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더욱 드러내기 어려워지고, 남이 나의 문제를 알게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만 커집니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꾸밈 없이, 더 이상의 남에 대한 환상 없이, 자신과 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른 곳은 몰라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는 누구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할 때, 모든 가식을 제거한 참된 성도의 교제가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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