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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판단

카테고리 없음 2007. 12. 17. 17:39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판단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음이니이다(시119:75)

요즘 욥기를 읽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난을 겪어서 욥기가 생각난 것은 아니고, 그냥 성경을 순서대로 읽다 보니까 욥기가 나오는군요. 욥기를 읽다보니까, 고 3때 막 어려운 고비를 만난 순간, 욥기를 읽으며 새롭게 용기를 얻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존재인가를 가르치시는 장면을 보며, '아, 대학에 붙건 떨어지건, 내가 이 일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불평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입시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죠.

요즘도 욥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시 나중에라도 더 나눌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욥의 고난이 웬지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더군요. 그러면서 '하나님, 도대체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겁니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뭐 '나중에 더 큰 축복을 주기 위해...' 가 정답일찌 모르겠습니다만, 아니, 세상에 자기 자식이 몰살당하고, 온몸이 피부병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부부관계가 깨지고 나서, 자식과 재산이 이전보다 두배로 는다고 좋겠습니까? 자식 둘 있는 사람이 그 둘이 죽는 것을 본 후, 네 명의 자식을 더 낳으면 두 배의 축복을 받았다고 싱글벙글할 수 있을까요?

욥의 고난은 며칠째 제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같이 사역하던 간사 한명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분이 절 위해 기도해 주시면서 말씀을 받았다고 하면서 시편 119편 75절을 읽어보라고 하였습니다. 위에 나온 구절이지요.이 구절을 읽자마자 제 고민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임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제 머리속에서 욥의 고난이 떠나지 않은 이유는, 욥의 고난을 핑계로 제 자신의 고난에 대해 항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차마 내 이야기는 못하고, 욥을 지적하면서, '왜 저사람이 저런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 구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기에, 이건 네게 필요한 과정이야. 그러니까 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 할찌라도, 내가 성실한 이상 이 일을 건너뛸 수는 없다.'

하나님의 판단... 하나님께서 이 과정이 내게 필요하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정말 필요한 일이겠지요. 제가 어떻게 판단하건, 하나님의 판단이 정확하지 않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 제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나를 정금같이 단련하려는 하나님의 역사임이 분명합니다. 저는 '아, 이제 그만! 이 정도면 다 단련된거 아닌가요?'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다, 내가 판단하기엔 아직 멀었다...' 하십니다. 제 입장에선 답답하지만, 하나님의 판단이 옳겠죠.

제 가장 큰 단점 중의 하나가 바로 끈기의 부족입니다. 무슨 일이 다 될때 끝내는 것이 아니라 끈기가 떨어질때 끝내니까 완전하지 않은 작품이 잘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옛날, 프랑스에서 DTS간사를 할 때, 어느 학생이 제 머리를 잘라줬습니다. 근데 그날 따라 머리카락이 피부를 찌르는 느낌이 어찌나 싫던지 '아, 이만하면 됐으니까 그냥 끝내자'하고 거의 도망쳐 버렸습니다. 제가 봐도 영 쥐가 물어뜯은 것 같이 이상한 헤어스타일이 되고 말았지만, 자존심때문에 그렇게 인정하지도 못하고, 그냥, '뭐 이정도면 됐쟎아' 하고 넘어갔죠.하지만 마음 속으론 '에이, 좀 더 참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너 이 머리 누가 이렇게 해놨니?' 할때마다, 자신의 참을성 없음에 대해 반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무리 '이제 다 됐죠?' 해도 자기가 보기에 아니면, '아직 아니다'고 말하는 정직한 이발사 같은 분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끈기 부족을 다룰 수 있는 분이죠. 이제 하나님의 판단력을 믿으며, 그분의 성실하심을 믿으며 내 인생을 다시 한 번 그분의 손길에 맡기기로 결정합니다. 그분의 시간에, 그분께서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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