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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시련

카테고리 없음 2007. 12. 17. 12:03
What we call the beginning is often the end
And to make an end is to make a beginning.

-T.S. Eliot, Four Quartets


얼마전 시내에 있는 서점을 갔다가 영서 코너에서 반가운 책을 한권 발견했습니다. T.S. Eliot의 Four Quartets라는 시를 담은 시집인데, 이 시집 말고도 엘리엇의 시집 몇권이 더 보였습니다. 저는 원래 시집이나 시인에 대해 관심이 없는데, T.S. Eliot의 시 만큼은 제 마음에 와닿더군요. 물론 이 글을 읽는 분 대부분이, 'T.S. Eliot이 누군데?' 하시겠지만, 이 사람이 '사월은 잔인한 달...' 하는 구절을 썼다면 모두, '아하!'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Four Quartets에 대해선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97년, 프랑스에서 1년간의 간사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사역했고, 열매도 많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건 1년 전 떠날 때 보다 더욱 어려워진 가정 형편과, 그로 인해 고생하시는 부모님,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싫어서 집 밖으로 맴돌며 집에 들어와서는 사사건건 부모님과 마찰을 빚는 내 자신의 모습뿐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쌓였던 울분이 폭발하면서 부모님앞에서 악을 쓰며 싸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었을 것입니다...

끝이 없는 것 같은 가난, 끝이 없을 것 같은 가정 불화... 하루 하루의 삶이 고통이었고, 어디서도 소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왜 내 삶에 이런 고통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죠. 그리고 먼 옛날부터 계속되어온 이러한 고통이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지를 알 수 없기에 고통을 이겨낼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Eliot의 Four Quartets에 나오는 이 싯구가 기억이 나더군요.

To be redeemed from fire by fire...


불로부터 불에 의해 구원된다... 그때 제 마음속에 '지금 내가 당하는 고통은, 나를 고통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다'는 계시가 임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더 이상 고통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그가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미국인이었지만, 유럽의 문화를 너무 사랑해서 결국 영국에 귀화합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하고 영국 국교회 교인이 됩니다. 그런데 그가 영국에 살고 있을 때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나이가 너무 많아 군대에 갈 수 없었던 그는, 런던에서 감시탑에 올라가 폭격으로 불이 난 지점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저는 가끔 그 감시탑에 올라간 Eliot의 심정을 상상해 봅니다. 젊은날, 서양 문명의 영적, 지적 황폐함을 간파하고 'The Waste Land'를 썼던 그였고, 유럽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조국을 버리고 유럽 시민이 된 그였는데, 이제 그의 눈 앞에서 그가 지극히 사랑하는 유럽이 전쟁에 의해 진짜 황무지로 변해버릴 위기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불이 꺼집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더니 런던 곳곳에 불이 솟구쳐 오릅니다. 불, 불, 곳곳에 펑펑 소리를 내며 불기둥이 솟아오릅니다. 칠흙같은 어둠속에 피어오르는 불꽃은, 그러나 이 시인의 머리속에 예상치 못한 연상작용을 일으킵니다. 헤라클레스의 몸을 태운 불로부터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의 불까지, 그의 머리는 유럽 문명을 흐르고 있는 갖가지 불의 이미지를 추적해 올라갑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이 불은 파괴하는 불일 뿐 아니라, 정결케 하는 불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타오르는 이 불이 하나님이 유럽을 정화하기 위해 보내는 불로 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 시에서 '불'이 '사랑'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Who then devised the torment? Love.') 그는 이 불이 우리를 불에서 건지기 위한 불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저도 우리 가정에 그런 큰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우리 가정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느낍니다.

요즘, 다시 이 구절이 생각나는 것은 단지 이 시집을 발견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시 내 삶에 많은 고난과 좌절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난의 가장 끝에 닥치는 고난은, 절망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고난이 끝날 때가 다 되었다는 신호인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랑으로 우리에게 불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분은 우리를 불로써, 불로부터 구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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