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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준비함

카테고리 없음 2007. 12. 19. 21:09
저는 얼마전 부신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올 봄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갔더니 알도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나오고 있더군요. 그 원인을 찾기 위해 CT를 두 번, MRI를 한 번 찍었는데, 그러고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해 병원에 입원해서 혈관조영 (다리에 있는 혈관으로 관을 넣어 양쪽 신장에서 나오는 피를 직접 체취함)을 한 끝에 왼쪽 부신 (신장 위에 있는 작은 기관)이 문제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래서 그 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수술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몇 달이나 끌어온 문제가 해결된다는 기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그간 원인을 못찾아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막상 수술을 며칠 앞두고는 불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겁이 많아서 수술을 두려워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저는 객관적으로 봐서 위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전혀 겁을 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놀이공원에서 위험해 보이는 기구를 타는 것은 제게 전혀 겁나는 일이 아닙니다. 놀이기구는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죠. 놀이기구를 타다가 이용객이 다치면 놀이공원에 손해이기 때문에 위험의 요소를 미리 다 제거했으니까요. 같은 이유에서 몇년 전 번지점프를 할 때도 머뭇거리지 않고 뛰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의사가 안전하다고 장담하는 이러한 수술에 대해서도 별로 겁이 나지 않아야 정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겁이 났습니다.

생각해 본다면 제가 이 수술에 대해 겁을 내기 시작한 것은 이 수술을 하려면 부분 마취가 아니라 전신마취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부터입니다. 그 전까지는 이 수술이 그냥 불편하고 아마도 조금은 아픈 수술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전신마취를 한다고 생각하니 겁이 든 것이지요. 전신마취를 하게 되면 환자는 의식을 잃은 가운데 의사가 수술을 하고, 환자는 수술이 끝난 상태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제가 겁이 나는 부분은 "의식을 잃는" 부분입니다. 의식을 잃은 가운데 내 몸이 변하고, 깨어나면 다른 상태인데, 나는 의식이 없기에 그러한 큰 변화에 대해 전혀 개입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불안한 것이지요.

같은 이유에서 저는 죽음도 두려워합니다. 물론 저는 크리스천이기에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막상 죽음의 순간을 생각해 보면, 제가 죽는 순간 의식을 잃어 깨어날 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제가 컨트롤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죽음이 두려운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콘트롤을 잃는다는 사실이 두려운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저도 대단히 컨트롤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드네요).

중세 그리스도인들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memento mori)는 말을 마음에 세기고 살았습니다. 해골을 앞에 놓고 기도하거나 생각에 잠긴 남자의 그림은 모두 이러한 주제를 표현하지요.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고, 따라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며 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은 "죽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라"는 말을 따라 사는 듯 합니다. 건강에 대한 집착이나 동안에 대한 관심은 모두 영원한 젊음을 누려 죽음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근거한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어려보이는 얼굴도 언젠가는 늙고, 언젠가는 죽습니다. 따라서 현대인은 어느 시대의 사람들 보다 더 죽을 준비가 안된 가운데 죽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죽음에 대해 두려워한 이유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여도, 하나님이 나를 천국으로 이끄신다는 믿음, 그러한 믿음이 있다면 죽는 순간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여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17:15)

그의 말은, "내가 죽음의 잠에서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따라서 죽을 준비가 된 상태로 살았죠. 저도 죽을 준비를 하며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내 삶을 내가 컨트롤하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기쁜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죽고 싶습니다. 내가 죽음의 잠에서 깰 때, 나는 주의 형상을 보고 만족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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